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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특집방송] 시장상인의 이야기에서 다시 묻는 CSR의 본질

작성자
연제FM관리자
작성일시
26.07.28 15:41
조회수
6

수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변해야 CSR입니다

문화연구의 거장 스튜어트 홀은 문화를 고정된 명작이나 고급예술의 집합이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겪고 해석하며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경험’으로 보았습니다. 문화는 박물관이나 공연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먹고, 일하고, 말하고, 관계 맺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전통시장과 골목시장은 매우 중요한 문화의 현장입니다. 시장상인들이 손님과 나누는 대화, 물건을 권하고 흥정하는 방식, 오래된 단골과의 관계, 상인들끼리 공유하는 규율과 불평, 농담과 생활의 지혜는 모두 그 지역의 현실을 구성하는 살아 있는 문화입니다.

시장상인의 삶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는 일은 단순한 인터뷰나 홍보 콘텐츠 제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시간을 살아왔고, 어떤 관계 속에서 버텨왔으며, 어떤 말과 몸짓으로 자신의 생계를 이어왔는지를 기록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시장상인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은 그들의 삶의 본질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흔히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의 일화로 알려진 이야기 중에, 부러졌다가 다시 아문 대퇴골을 ‘돌봄의 흔적’으로 해석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실제로 마거릿 미드의 발언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던지는 상징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다리가 부러진 존재가 다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혼자의 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가 곁을 지키고, 먹을 것을 나누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며,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인류 문화의 시작은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약해진 사람을 공동체 안에 다시 머물게 하는 돌봄의 질서에서 비롯됩니다. 인간이 인간을 도구나 생산성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아프고 약하고 느린 존재까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품어낸 순간, 비로소 문화와 문명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CSR 역시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CSR은 단지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기업이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를 발견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누구의 삶을 다시 공동체 안으로 연결할 것인가를 묻는 일입니다. 그것은 기부금이나 보고서의 숫자를 넘어, 인간이 인간을 돌보는 오래된 문화의 본질을 오늘의 기업 활동 속에서 다시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장과 효율을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쟁의 속도에서 밀려나고, 관계에서 단절되고, 삶의 구조가 흔들리는 상처를 겪어왔습니다. 진정한 CSR은 이러한 사람들을 단순히 ‘지원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들이 다시 자신의 목소리를 회복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공동체와 경제 생태계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이어야 합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 바깥에서 선행을 베푸는 일이 아닙니다. 기업 역시 하나의 생태계 구성원입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발생한 균열과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회복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업이 가진 자원, 기술, 인력, 네트워크가 약해진 사람들의 삶을 다시 연결하고, 그들이 지역과 시장과 공동체 안에서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이야말로 CSR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형식주의와 증거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변화는 보고서로 정리되어야 하고, 모든 선한 영향력은 수치와 그래프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물론 기록과 증빙은 필요합니다. 임팩트 결과보고서, 성과지표, 정량적 수치, 체계화된 증빙자료는 사업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다만 본질이 형식을 전도해서는 안됩니다.

해서 우리는 한 가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이 보고서와 증빙은 우리가 만나고자 했던 사람들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의 삶을 몇 개의 항목과 숫자로 축소하고 있는가?